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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명언

[좋은글] 겸손과 청빈 - 따뜻한 하루 겸손과 청빈 - 따뜻한 하루 조선 숙종 때 뛰어난 학자로 명성 높은 '김유'는 대제학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대제학은 국가의 문한(文翰)을 총괄하는 지위로 문과 출신 중에서도 학문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임명하는 자리로 권위와 명망이 높아 관료의 최고 영예였습니다. 대제학의 자리에 오른 날 그는 가족들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이번에 내가 몸담게 된 대제학의 자리는 누구보다 청빈하고 겸손해야 하는 자리요. 그러니 잊지 말고 앞으로는 더욱 몸가짐과 행동에 조심해주기를 바라오." 이후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사용하던 비단옷과 은수저 등 사치품들은 팔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고 다섯 가지 반찬을 세 가지 반찬으로 줄이도록 했으며 값싼 삼베옷을 입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는 중 그의 아들이 장가를 가면서 며느리가.. 더보기
[좋은글] 자부심과 긍지 - 따뜻한 하루 자부심과 긍지 - 따뜻한 하루 화창한 봄날 아이들이 공원에서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나 찾아다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눈에 공원 한쪽 벽에 페인트를 열심히 칠하는 세 명의 어른들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다가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아저씨. 지금 뭐하고 계세요?" 첫 번째 어른은 아이들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페인트칠하고 있는데 지금 너무 힘드니까 조용히 해줄래?" 아이들은 두 번째 어른에게 같은 질문을 하자 피곤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뭐하긴?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 옷에 페인트 묻으니, 저리 가서 노는 게 좋겠구나."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세 번째 어른에게 질문하자 즐거운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대답했습니다. .. 더보기
[좋은글] 욕심이 과하면 화가 된다 - 따뜻한 하루 욕심이 과하면 화가 된다 - 따뜻한 하루 옛날 어느 욕심 많은 상인이 장터가 크게 울리도록 땅을 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내 돈주머니! 내 돈주머니가 없어졌네. 이것 보시오. 내 돈주머니를 찾아주시오. 찾아주는 사람에게는 그 돈주머니 안에 든 돈 절반을 줄 테니 제발 찾아주시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순박해 보이는 한 청년이 돈주머니를 들고 상인을 찾아 왔습니다. "돈주머니를 잃었다 들었는데 이것이 당신 것입니까?" 상인은 반색하며 청년에게 돈주머니를 받았습니다. 정말 잃어버렸을 때 들어있던 돈 천 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년에게 약속한 사례비 오백 냥이 아까워진 상인은 순간적으로 못된 꾀를 부렸습니다. "어허, 이 돈주머니에 삼천 냥이 들어있었는데 지금 천 냥만 있.. 더보기
[좋은글] 가르침의 징검다리 - 따뜻한 하루 가르침의 징검다리 - 따뜻한 하루 시골 분교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을 때 일입니다. 이렇게 외진 곳에 초등학교가 유지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작은 시골 마을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습니다. 맑은 공기와 인심 좋은 어르신들, 순수한 학생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아내를 두고 주말부부 생활을 하는 것은 사실 고역이었습니다. 어느 날 모처럼 아내가 저를 만나러 온 날이었습니다. 기쁜 마음에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천을 건너기 위해 징검다리 위를 서둘러 뛰었습니다. 마을에는 이미 튼튼한 콘크리트 다리가 있지만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은 10여 분 정도의 거리를 단축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서둘러 징검다리를 건너던 중 아니나 다를까. 잘못 밟은 돌과 함께 그대로 미끄러져 .. 더보기
[좋은글] 나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요 - 따뜻한 하루 나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요 - 따뜻한 하루 중국 후난TV의 인기 프로그램인 '어메이징 댄스'는 아마추어 댄서들이 출연하여 경연하는 쇼입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특별한 모녀가 있습니다. 12살 소녀 '지앙 좡 지이'는 발레복을 입고 무대에 앉아 발동작이나 걸음걸이 없이 상반신과 손동작만으로 아름답고 예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지이의 등 뒤에 나타난 지이의 엄마도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지이의 엄마가 지이의 몸을 들고 회전하며 춤을 추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그만 놀라고 말았습니다. 어린 지이는 허벅지 아래로 양다리가 없었습니다. 지이는 6살 되는 해 교통사고로 양다리를 잃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지만 오히려 지이는 엄마에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엄마. 내 다리가 되어 주.. 더보기
[좋은글] 아파하는 사랑 - 따뜻한 하루 아파하는 사랑 - 따뜻한 하루 자녀 셋을 홀로 키우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자기 집에 온 지인이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자녀 셋 중 누구를 가장 사랑하나요?" 그러자 여인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막내가 병들었을 때, 그때는 막내를 가장 사랑했습니다. 둘째가 집을 떠나 방황했을 때, 그때는 둘째를 가장 사랑했고요. 큰 아이가 학교성적과 이성 문제로 괴로워할 때, 그때는 큰아이를 가장 사랑했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는 항상 자녀와 고통을 함께 나눕니다. 자녀가 고통스러워할 때 그것을 사랑으로 끌어안는 사람이 바로 부모입니다. 언제나 부모의 마음이란 그렇습니다. ※ 참고 : http://www.onday.or.kr/wp/?p=11484 # 오늘의 명언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의.. 더보기
[좋은글] 빛바랜 사진 한 장 - 따뜻한 하루 빛바랜 사진 한 장 - 따뜻한 하루 그림 공부를 위해서 미국에서 유학할 때의 일입니다. 가끔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용돈을 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지인을 통해 찾아온 한 할머니에게 뜻밖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척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한 할머니는 낡은 흑백사진을 한 장 건네주며 이 사진의 아이들을 예쁜 색을 입혀 초상화로 그려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사진에는 열 살 남짓해 보이는 남자아이들과 조금 어린 여자아이가 사이좋게 손을 꼭 잡고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흑백 사진 속에 아이들이 입고 있던 옷의 색까지 하나하나 말하며 꼭 색을 입혀 그림을 그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지인의 부탁도 있어서 나름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는데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 할머니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몇.. 더보기
[좋은글]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 따뜻한 하루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 따뜻한 하루 1940년 미국 테네시주 북부 클라크스빌의 슬럼가에서 22 형제 중 20번째로 태어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미숙아였고 4세 때 폐렴과 성홍열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가 마비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아이의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나중에는 물리치료를 배워서 집에서 재활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헌신 덕분에 8세 때는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11세 때에는 보조기구마저 벗어 던졌습니다. 아이는 의사에게 당당히 말했습니다. "저는 육상 선수가 되어서 달리고 싶어요." 그리고 열다섯 살이 된 아이는 놀랍게도 육상경기에 출전하였으며 육상코치에게 또다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이 아이는 바로 1960년 로마올림.. 더보기
[좋은글] 우린 버림받은 게 아니었어요 - 따뜻한 하루 우린 버림받은 게 아니었어요 - 따뜻한 하루 "부모님이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었어요." 이미 마흔을 훌쩍 넘긴 남매가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37년 전 집안 사정이 어려워 친척 집을 전전하던 남매는, 작은아버지가 남매를 부모에게 데려다주던 길에 미아가 되었습니다.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작은아버지는 차마 형님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했고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변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매의 부모는 당시 10살인 아들과 7살인 딸을 찾아 나섰지만 유일한 목격자였던 작은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결국 아이들을 찾는다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끝내 포기할 수 없던 부모는 37년이 지난 2012년에 다시 한번 자녀들의 실종 신고를 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아이들이 실종되었는.. 더보기
[좋은글] 사람이 가장 소중한 자산 - 따뜻한 하루 사람이 가장 소중한 자산 - 따뜻한 하루 피아니스트이자 폴란드의 총리였던 파데레프스키가 있었습니다. 그의 재임 시절 폴란드는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습니다. 다른 유럽 국가에 식량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파데레프스키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했으며,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사퇴 압력은 거세졌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폴란드 국민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먹을 수 있는 2백만 톤의 식량을 보냈습니다. 더욱이 파데레프스키는 미국에 원조 요청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미국 식량 구호국(ARA)의 초대 국장이자 이후 미국 제31대 대통령으로 재임한 '허버트 후버'의 도움 덕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1892년 아직 스탠퍼드의 학생이던 허버트 후버는 미국에서 연주.. 더보기